
名士探訪 · MYUNGSA vol.04
㈜태방파텍 대표 · 식품 포장 외길 30년
“위기는 늘 있습니다.
다만 그 안에, 기회도 함께 있더군요.”
강소기업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화려한 말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일에 30년을 매달린 사람 특유의, 단단하고 조용한 기운이 있었다.
나는 평소 ‘진실된 기업인’을 만나 그 사람의 결을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성공담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버텼는지를. 정희국 대표는 꼭 그런 사람으로 보였고 — 그래서 인터뷰를 청했다.
그가 만든 포장은 지금 SPC와 오뚜기의 간편식에 담겨 일본과 미국의 식탁에 오른다. 학벌도 배경도 없던 한 소년이, 어떻게 ‘세계가 찾는 포장’의 주인이 되었나.
그는 자신을 대단하게 말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야간 중학교를 다니며 엿을 팔았고, 공고를 나와 대기업 제지연구소에 들어갔다고. 민간 연구소 1호 연구원으로 뽑힐 만큼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공고 출신’이라는 벽은 단단했다.
설비 영업으로 자리를 옮겨 성과를 냈을 무렵, 급성 간 농양으로 쓰러졌다. 병상에서 돌아와 받아 든 월급봉투는 60%만 채워져 있었다. 그 봉투 앞에서 그는 결심했다. 마흔둘, 그제야 자기 일을 시작한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내 때였으니까요.”
“신뢰는 곧 신용이고,
신용은 돈보다 중요합니다.”
— 정희국
외환위기 한복판, 러시아행 비행기 안에서 그는 한 가지 생각을 붙들었다. 빵 포장재를 농산물 포장으로 바꾸면 어떨까. 그렇게 신선도를 지키는 ‘숨 쉬는 필름’이 나왔다. 마트도 백화점도 거절하자, 그는 “3개월 무상으로 드릴 테니 써보고 결정하시라”고 했다. 3개월이 되기 전에 정식 납품 요청이 왔고, 농산물 유통의 판이 바뀌었다.
성공 뒤엔 또 위기가 왔다. 공장을 늘리며 진 빚이 그를 다시 몰았다. 2년을 매달려 내놓은 답이 ‘찜팩’이다. 뜯지 않아도 전자레인지에 데울 수 있는 포장 — 모서리의 작은 증기 배출구 하나가, 음식의 촉촉함을 지켰다. 2017년, 그 기술은 장영실상과 세계포장협회 월드스타상으로 증명됐다.


“막다른 곳에서,
한 번도 없던 걸 만듭니다.”
그의 원칙은 회사 밖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신뢰는 신용이 되고, 신용은 돈보다 중요하다는 것. 내 것이 귀하면 남의 것도 귀하다는 마음으로 거래처와 직원을 대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늘 진인사대천명 — 할 수 있는 만큼 다하고, 결과는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2019년, 그는 장학재단에 기부하고 감사패를 받았다. 가난으로 일찍 일터에 나섰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누군가의 배움을 돕는 자리에 섰다. 요란한 선행은 아니었다. 번 것을 조용히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 — 그것도 그가 말한 진인사대천명의 한 모습이었다.
“내 것이 귀하면,
남의 것도 귀합니다.”
가난한 집 장남, 야간 중학교의 엿장수, 병상에서 일어난 마흔둘의 창업가. 그의 30년은 한 문장으로 줄어든다 — 막힌 곳에서, 세상에 없던 걸 만든다.

전후 세대로 태어나 가난 속에 야간 중학교를 다녔고, 공고를 거쳐 대기업 제지연구소 민간 1호 연구원이 됐다. 만 42세에 ㈜태방파텍을 창업해 식품 포장 한 길을 걸었다. IMF 중 ‘숨 쉬는 필름’, 이후 ‘찜팩’으로 위기마다 시장에 없던 포장을 만들어냈다.
Interviewer · 이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
그는 끝내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다. 연 매출도, 받은 상도, 물어봐야 겨우 대답했다. 대신 가장 오래 이야기한 것은 버티던 시절과, 그때 지킨 마음이었다.
나는 늘 말해왔다. 좋은 콘텐츠는 인물을 빛나게 하지 않는다고. 인물이 본래 가진 빛을, 가리지 않을 뿐이다. 정희국이라는 사람은, 굳이 빛내지 않아도 이미 충분했다.
— 윤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