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名士探訪 · MYUNGSA vol.01
통증의학 명의 · 서울안강병원 원장
“너처럼 고생한 사람이
의사가 돼야 한다.”
그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텔레비전은 그를 ‘백만장자 의사’, ‘낭만 의사’라 불렀다. 강남 8층 병원, 카타르 공주와 중동의 왕족이 찾는 통증의학 명의. 그러나 이 화려한 이력의 출발점은, IQ 90으로 담임에게서 “공부 시키지 마시라”는 말을 듣던 한 국졸 소년이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가난으로 학업을 놓았다. 공장에 들어가 식구들의 생계를 짊어졌고, 검정고시로 중졸과 고졸을 따냈다. 방황하던 어느 날, 우연히 들어선 병원 건물에서 한 의사가 그에게 말했다. “너처럼 고생한 사람들이 의사가 돼야 진짜 의사가 된다.” 그는 그 사람을 지금도 ‘인생의 은인’이라 부른다.
30년이 흐른 지금, 그는 만성통증 분야에서 세계가 찾는 명의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 번에 천만 원이 드는 의료봉사를 위해 여전히 전국을 누빈다. 그와 나는 같은 시절을 지나온 오랜 벗이다. 늦여름의 오후, 강남 8층 진료실 옆 작은 방에서 나는 그와 마주 앉았다.
그를 부르는 별명은 둘이다. ‘낭만 의사’ 그리고 ‘골때리는 의사’. 후자는 그가 기존 의학의 상식을 자주 깨뜨렸기 때문에 붙었다. 이를테면 주사를 엉덩이가 아니라 통증이 있는 부위에 직접 놓는 식이었다.
“통증이 있는 자리에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교과서가 ‘여기에 놓아라’ 하면, 저는 ‘왜 거기죠?’부터 물었습니다. 환자가 아픈 건 정작 다른 곳인데요.”
“덕분에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웃음) 그래도 환자가 나으면, 상식보다 결과가 먼저입니다.”
“교과서가 아니라,
아픈 자리가 정답을 압니다.”
그의 진료실에는 국경이 없다. 카타르의 공주가, 중동의 왕족이, 글로벌 사업가들이 그를 찾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 명성이 퍼진 경로다. 시작은 뜻밖에도 ‘리비아의 한 감옥’이었다.
“예전에 제 진료를 받았던 중동의 고위 관료가, 정권이 바뀌면서 감옥에 갇혔어요. 그분이 감방 안에서 그러셨대요. ‘안강한테 가면 싹 낫는다’고. 그 한마디가 중동에 쫙 퍼진 겁니다.”
“결국 환자가 가장 좋은 광고예요. 아픈 걸 진짜로 낫게 해주면, 소문은 알아서 퍼집니다.”
세계가 찾는 명의의 출발은 초라했다. 어릴 적 그는 유달리 체구가 작고 허약했다. 사과 한 쪽만 먹어도 배가 아파 데굴거리는 아이였다. 학교 성적도 좋지 못했다.
“IQ가 90이었어요. 담임선생님이 부모님께 ‘얘는 공부 시키지 마시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요.(웃음) 중학교 1학년 때 집이 어려워져서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공장에 들어가 식구들 먹고사는 걸 책임졌어요. 그러면서 틈틈이 검정고시로 중졸, 고졸을 땄습니다. 대학은 가야겠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방황했어요.”
방향을 잃고 헤매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한 병원 건물에 들어섰다. 거기서 마주친 한 의사의 말 한마디가, 그의 인생 전체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너처럼 고생한 사람들이
의사가 돼야, 진짜 의사가 된다.”
“벼락 같았어요. ‘나 같은 사람도 의사가 될 수 있다’가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었으니까요. 고생을 아는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거죠.”
“그분이 제 인생의 은인입니다. 그 한마디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습니다.”
의사가 된 뒤에도 크게 흔들린 적이 있다. 아버지가 예기치 못한 수술 실패로 세상을 떠났을 때다. 사람을 살린다는 일이, 정작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 무너졌다.
“아버지가 수술이 잘못돼 돌아가셨어요. 그게… 의사라는 제 존재 자체를 흔들었습니다. 두 달을 병원에 안 나가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그를 다시 일으킨 건, 오래전 어머니의 약속이었다. 아들이 무사히 의사가 되기를 빌며, 어머니는 절에서 108배를 올렸다. 그 기도에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이 아이가 의사가 되면, 꼭 봉사를 시키겠습니다.”
“어머니의 약속이니까요. 한 번 봉사를 나가면 천만 원이 넘게 듭니다. 그래도 갑니다. 아픈 사람이 있는 곳에 가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게 제가 아는 의학이고, 제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큰 트럭에 좋은 장비를 가득 싣고, 해외까지 봉사를 가고 싶어요. 그러려면 돈을 더 벌어야 합니다.(웃음) 제가 아직도 진료실을 지키는 이유예요.”
“성공이요? 통장의 숫자가 아니라, 제가 어디에 서 있느냐가 저를 설명한다고 믿습니다.”
“큰 트럭에 장비를 싣고
해외까지 봉사 가고 싶어요.
그때까지는, 더 벌어야죠.”

국졸·검정고시 출신에서 강남 8층 병원의 원장이 된 통증의학 전문의. 만성통증 분야에서 카타르 공주와 중동 왕족까지 찾는 명의로 꼽힌다. 20여 년간 한 번에 천만 원이 드는 의료봉사를 이어오며 ‘낭만 의사’, ‘골때리는 의사’로 불린다.
Interviewer · 이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

그와 나는 같은 시절을 지나온 오랜 벗이다. 한 사람은 디자인과 광고로, 한 사람은 의학으로 길이 갈렸지만, 다시 마주 앉으니 우리가 끝내 같은 것을 좇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
명사탐방의 첫 손님으로 그를 떠올린 건, 그가 가장 화려해 보이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너무 빨리 잊는다. 비씨컴이 ‘명사탐방’을 만드는 이유가 거기 있다. 제대로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된 그릇에 담아 사회에 남기는 일.
좋은 콘텐츠는 인물을 빛나게 하지 않는다. 인물이 원래 가진 빛을, 가리지 않을 뿐이다.
— 윤일기